Jiwon Lee

엄수현, 《HAPPY HAPPY LAND》 — 전시 서문

귀여움의 욕망

엄수현은 자신의 회화에 독특한 색채로 표현된 동물들을 지속적으로 등장시켜왔다.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유아적 행동을 하는 동물들은 ‘귀여운 것’으로, 다시 말해 무력하기 때문에 어떤 보호 본능을 일깨우는 존재로서 평면 위에 나타난다. 작가의 신작에서 얼굴을 달고 등장하는 식물들은, 그동안 작가가 그려왔던 동물보다 더욱 귀여움을 부각하는 캐릭터다. 유명한 캐릭터와 닮아, 표정을 지니고 왜곡된(deformed) 식물들은 ‘귀여움’이 가진 표층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귀여움이란 일상적이면서도 소소하고 대중적인 미로, 칸트 식의 숭고미(sublime)에 포섭되지 않는 키치(kitsch)적—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질색했던—이고 자본화된 미학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귀여워 할 때’ 우리는 대상에게 일방적 시선을 강제로 덧씌우고, 그 본질을 흐리게 희석한다. 동물의 행동을 쉽게 의인화하여 해석하듯, 자신이 상대에게 원하는 모습만을 투사하여 보는 것이다. 그것은 동물원의 철창 안에 갇혀 사육당하는 존재들에게 보내는 시선이며, 따라서 전지전능함을 등에 업은 권력이다.1 그 이면에는 우리가 보호하지 않으면 쉽게 상처 입는 약자를 대상화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대상화된 귀여운 존재는 무엇보다 나(주체)에게 위협적이지 않으며, 우월하지 않은 객체여야 한다.2 자연의 숲속에서 자신을 향해 발톱을 들이미는 곰을 누가 귀엽다고 말할 것인가.

타자들의 원더랜드

대중문화가 귀여움을 상품화해왔던 방식대로, 엄수현은 현실과 괴리된 세상을 만든다. 동화 속 세상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화면 구성 속에서, 귀여운 존재들은 엉뚱하거나 과장된 행동과 표정을 보이며 시간과 공간에서 오롯이 분리되어 박제된다. 그곳에서 현실에 대한 환멸은 환상으로 포장되고, 갈등과 불안은 지워지고 외면된다. 정치적 의지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박애주의자들로 가득한 낙원이다.

그러나 그 완벽한 원더랜드(wonderland)의 동식물은 역설적으로 타자(他者)의 위협을 상상하게 하는 존재다. 타자는 순진한 미소와 귀여움 너머로 그로테스크(grotesque)가 도사린, 하나의 괴물로서 현존한다. 유에민쥔(岳敏君, Yue Minjun)의 얼굴들이 짓는 냉소적(Cynical) 미소가 억압되어온 들끓는 슬픔을 담고 있었듯, 엄수현의 회화 속에서 즐겁게 노니는 생명들은 서커스단처럼 우스꽝스럽고 기묘한 몸짓을 표출함으로써, 귀엽되 낯선 섬뜩함의 어느 경계지로 관람자를 몰아세운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동물과 식물들은 검은 동공으로 화면 밖의 우리를 응시하며 그 광증(狂症)을 화면 위에서 조용히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친근하고 무해해 보이는 캐릭터들은, 다른 한편에서 바라보면 광기의 존재이자 낯선 괴물(타자)의 형상화다.

소름 돋는 귀여움

우리가 귀여운 대상에게 보내는 연민—모성애의 감정—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된 존재는 더욱더 결핍되고 연약해진다. ‘귀여운 것을 껴안는 행위’에서 드러나듯이, 연약한 존재에 대한 감정은 쉽사리 대상에 대한 공격성으로 바뀔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따라서 귀여운 대상이 무해하고 무력해 보일수록, 폭력, 학대, 분노와 증오 같은 불쾌한 감정들과 연관되어 보이게 된다.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Murakami Takashi)의 <미스터 도브 Mr. DOB> 연작이나, 요시토모 나라(奈良美智, Yoshitomo Nara)의 작업에서 이러한 불쾌함과 귀여움의 양면성이 잘 드러난다. 마릴린 아이비(Marilyn Ivy)는 나라의 ‘소녀들’을 “부키미 카와이(不気味可愛い),” 즉 ‘소름 돋는 귀여움’으로 지칭하는데, 귀여움 자체에 섬뜩함이 함께 담겨 있어, 관람자로 하여금 그 이미지가 귀여운 것인지 소름끼치는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다.3

엄수현은 우리를 끝없이 불편하게 만드는 타자의 존재를 비현실적인 ‘귀여움의 이데올로기’로 덧칠함으로써 가리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연약한 귀여움이 관람자로 하여금 그 타자에의 불쾌감과 공포를 더욱 인식하게 만드는 셈이다. 현실을 비틀고 앙증맞은 외양을 탐닉하는 엄수현의 형식에는, 현실에 대한 유쾌할 수 없는 냉소가 자리하고 있다. 그 냉소는 거짓된 폭소(爆笑)로 위장되어, “뇌를 빼고 사는” 무기력증의 방식으로 다시 세상을 향한다.


  1. 권유리야는 귀여움을 하나의 장애상태로 바라보는데, 흐름에서 이탈한 기형적 존재로 일반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일반적인 장애상태와 달리, 귀여운 것은 대상에 대한 사랑스러운 감정만이 부각되지만, 그 이면은 힘의 논리에 의해 강자에게 길들여지고 사육된 자들이며, 독자적인 삶을 추구할 수 없어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약자의 상태와 같다고 말하며, 단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귀여움의 감정을 우리가 약자에게 느끼는 일종의 권력 감정으로 분류한다. “작고 무력한 존재가 전적으로 자신의 보호 아래 있다는 생각이 황홀감으로 바뀌는 귀여움의 판타지가 작동한다. 미성숙한 것을 아름다움으로 긍정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있기 때문에, 일단 귀여움이라는 단어가 개입되면 대중들은 금방 황홀감에 빠져 이를 장애상태로 인지하지 못한다. […] 작고 취약한 존재에 애정을 느끼는 이면에는 이에 대한 가학적인 관음의 쾌감이 작용하고 있다. 어린 대상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강자의 쾌감이 자극되는 것이다.” 권유리야, 「귀여움과 장애, 기형적인 것의 향유」, 『한국문학논총』 79 (2018): 35-41 

  2. Kanako Shiokawa, “Cute but Deadly: Women and Violence in Japanese Comics,” in Themes and Issues in Asian Cartooning: Cute, Cheap, Mad and Sexy (Ohio: Bowling Green State University Popular Press, 1999), 119 

  3. Marilyn Ivy, “The Art of Cute Little Things: Nara Yoshitomo’s Parapolitics.” Mechademia 5 (20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