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의 세계
코를 통해 공기 중의 화학 분자를 감지하는 것, 후각은 생명이 가장 빨리 진화시킨 감각이며, 매체로 확장하기 힘든 원초적인 감각이다.1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이 『미디어의 이해 Understanding Media』(1964)에서 매체(media)를 인간 신체의 확장(extension of man)이라고 했을 때, 그가 논하는 신체의 감각은 주로 시각과 청각에 대한 것이었다. 인쇄 매체의 발전 이후 인간의 감각 중에서 시각에 대한 비중은 고도로 높아졌고, 음성 저장 기술매체의 발전으로 청각에 대한 비중도 증가했다.2
그러나 매클루언은 일부 지면을 할애해, 동양 문화권에서는 ‘향’을 태움으로써 시간을 측정했음을 언급한다.3 여기서 그는 후각이 인간 감각 중 가장 미묘하고 섬세할뿐더러, 전체 감각을 오롯이 포괄하는 감각임을 말하는데, 따라서 인쇄매체를 위시한 시각문화 사회에서는 후각을 제거하고 통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4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나 아니카 이(Anicka Yi)의 작업 전반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여러 방법을 동원해 자연스러운 냄새(후각적 요소)들을 철저히 지우고자 노력하는 것에는 이같이 지배적인 시각문화가 가진 모종의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은 모든 것이 시각으로 환원된 지금의 세상에서, 발전하는 새로운 매체기술을 통해 우리가 본디 갖고 있던 오감(五感)의 균형을 다시 찾아나갈 수 있다고 바라봤지만, 아직까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화학분자들을 디지털화하여, 어느 장소에서든 알맞은 농도로 합성하고 재현하는 보편적 후각매체의 개발은 오늘날의 기술로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5 이처럼 매체로 옮기기 힘들다는 것은, 우리가 느끼는 감각들을 신체의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품을 파고드는 반려동물의 온기, 연인의 친근한 살결 냄새, 할머니가 끓여줬던 찌개의 맛처럼 촉각과 후각, 미각의 감각은, 시각과 청각에 비해 보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깊게 닿아 있다.6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냄새가 난다.”7
이번 개인전 《맡나서 반가워요 Nice to Sniff you》의 곽혜은 작가는 시각예술에 ‘후각’을 지속적으로 접목시켜, 본인의 작업을 후각예술(Olfactory Art)의 범주로 묶어왔다.8 <공간자화>(2024), <혜은의 손="">(2024), <다시 맡나서="" 반가워요="">(2024), <손 냄새="" 맡는="" 방법="">(2024), <체취 비누="">(2024)같은 작업에서, 설치된 시각적 결과물, 영상과 퍼포먼스의 연속적인 신체의 움직임(몸짓), 청각적인 효과, 체취는 서로 뒤섞여 배치되며 혼종적(hybrid)인 감각의 몽타주를 구성한다. 작가는 우리가 애써 통제하고 제거하려는 ‘자연스러운’ 냄새(체취)를 외려 밀도 있게 복제하고 재생산하여, 그 냄새를 통해 촉발되는 경험에 집중한다. 그에게 체취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언어화될 수 없는’ 이야기를 증언하는 수단처럼 보인다.[^9] 작가의 말처럼, 존재한다는 것은 냄새를 가진다는 의미이며, 인간의 체취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신체적 증거이자 기억 그 자체이다.체취>손>다시>혜은의>공간자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시청각적 이미지만으로 ‘재현’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의 매체 환경에서의 재현이란,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자극만으로 한껏 꾸며진, 불완전한 <트루먼쇼>의 세트장과도 같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죽음과 재난 *Death and Disaster*>의 연작을 통해 드러냈던 것처럼, 오늘날 쉴 새 없이 반복되고 복제되는 시청각적 이미지의 바다는, 우리로 하여금 특정 이미지들에 지나치게 익숙해지게 함으로써 그 이미지가 가진 진정한 의미들을 정체시키고 희석시킨다.[^10]트루먼쇼>
반면 냄새는 불현듯 ‘섬광처럼’ 다가와서, 우리에게 이미지를 새긴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1913)에서,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렌의 향을 맡으며 우연히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듯,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통제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현재로 소환되는 것을 두고 비자의적 기억(involuntary memories)이라 불렀다.9 비자의적 기억은 우리 의식 외부의 우연한 사건에 의해 촉발된, 과거 이미지의 단편을 현재와 잇는다.10 그것은 일회적이고 휘발적이기에, 반복될 수도 복제될 수도 없는 기억의 이미지로, 현재와 만나서 결합되며 새로운 의미를 자아낼 수 있다. 나아가, 저변에서 끌어올려진 유년의 기억들에는 사회의 역사적 이미지들이 파편적으로 담겨 있다. 이는 역사서술가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선택되고, 공적인 아카이브로 편집된 자의적인 기록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 속에 보존된 비선형적이고 사적인 역사이다. 이처럼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나를 넘어서 역사의 흐릿한 ‘기억을 맡는 것’이기도 하다.11
숭고한 악취의 장소
냄새는 ‘지금 여기’의 신체와 환경에 대한 밀접한 정보를 담고 있다.12 후각은 화학분자가 도달할 수 있는 유효 거리만큼의 범위에 귀속되는 감각이기 때문에, 서로의 체취를 맡는다는 것은 결국 같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의미이다. 같은 공간에서 근접해 냄새를 맡는 것은 나와 타자, 주체와 객체,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가 침범되고 흐려지는 상태로, 아우렐 콜나이(Aurel Kolnai)는 이처럼 낯선 분자들이 ‘체내’로 들어오는 상태를 두고, 후각을 혐오의 감각이라 말하기도 했다.13 그러나 곽혜은은 타자와 나 사이의 체취의 ‘섞임’과 경계의 교란을 “후각적 연대”라 표현한다.14 그에게 타인의 냄새를 맡는 것은 상대를 내 몸 안에 받아들이고, 감싸 안아, 서로를 연결하는 소통인 셈이다.
시청각의 세계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다른 감각을 탐구하려는 갈망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일상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래리 샤이너(Larry Shiner)는 미술관으로 들어오고 있는 냄새와 후각에 대한 담론과 작업들을 가리켜, ‘숭고한 악취(Sublime Stenches)’라 지칭한다.15 여기엔 그동안 냄새에 투영된 부정적인 관념을 빗대는 동시에, 미술에서 후각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시도와 관점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다. 이불의 <화엄 Majestic splendor>(1997)이, 생선이 썩어가는 그 지독한 악취 탓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철거됐던 사실을 떠올려보자. 아름다움을 영원히 지금 이 시간에 붙들고자 하는 인간의 시도가 부패의 냄새 앞에서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듯, 공기 중의 화학분자들은 ‘여기’ 존재했던 것에 대한 그림자이자, 유령처럼 잠깐 남겨질 뿐이다.
곽혜은이 만들어낸 향-냄새 분자들도,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관객의 기억 속에서 점차 망각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전시 관람을 끝마치고 코끝에서 냄새가 사라지는 순간을 관객들이 반드시 유념해보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니까. 곽혜은의 작업은, 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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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냄새 감각은 인체의 다른 많은 기능과 마찬가지로 진화 초기, 아직 바다에 살던 시절의 유물이다. 향은 먼저 물에 용해되어야 점막에 흡수되어 맡을 수 있다.”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23). 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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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Carl Sagan)이 1972년의 파이어니어호나 1977년 보이저호에 실어 보냈던 금속판과 LP의 메시지들도, 외계 생명체가 시각과 청각에 의존할 것이라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이고 시청각편향적인 관점에 입각한 것이었다. 심효원, 「공동체적 행위로서의 후각」, 『비교문학』 90호 (2023): 158-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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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shall McLuhan,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York: McGraw-Hill Book Company, 1964), 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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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구 문명사에서 후각은 비이성적이고 진화되지 않은 감각으로 여겨져 왔다. 프로이트는 냄새에 예민한 사람을 심리적으로 정체된 상태로 설명하기도 했다. Madeleine Kaye, “Tracing the Scent of Feminine Decay: Smell in the Art of Louise Bourgeois, Anya Gallaccio, and Clara Ursitti” (University of Dundee, 2021), 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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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분자의 인식 지연시간, 사람마다 다른 호흡주기, 냄새의 지속성, 문화적·인종적 차이, 후각신경의 적응성, 향의 질, 알러지, 다른 감각들과의 부조화 등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장벽들이 많다. 김정도, 「미디어 융합을 위한 후각 디스플레이 기술」, 『방송과 미디어』 20(3) (2015): 8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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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라스는 말한다. 우리는 “어머니를 보기도 전에” 그 체취를 먼저 맡는다고. Whitney Mallett, “Sissel Tolaas: The Certified Expert of All Things Smell Is on a Quest to Sharpen Your Fifth Sense,” PIN-UP 36 (2024):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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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혜은 작가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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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예술의 범주에 대하여는 다음 글을 참조. https://www.larryshiner.com/art-and-scent (2024년 8월 21일 접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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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현상(Proust phenomenon), 후각 뉴런은 기억을 처리하는 해마와 연계되어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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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가능성의 지금에 섬광처럼 스치는 과거의 이미지는 그것의 추가적 규정에 따라 볼 때 하나의 기억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는 위험의 순간에 등장하는 자신의 과거 이미지들과 유사하다. 이 이미지들은 주지하다시피 비자의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역사는 비자의적 회상의 이미지이고, 위험의 순간에 역사의 주체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이미지이다.”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5 :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길, 2008), 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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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를 증언하는 쇼아(Shoah) 예술-문학에서, 증언자들은 하나같이 그곳의 냄새에 대해 말해왔다. 그곳의 수감자에게는 악취의 혐의가 뒤집어 쓰였으며, 간수들은 혹여나 죽음의 냄새가 몸에 밸까, 향수를 짙게 뿌렸다. 나치는 수감자들의 더러운 냄새를 씻긴다며 그들을 샤워실로 보냈고, 그곳에서 퍼져나간 독가스는 공교롭게도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 ‘무취’의 죽음이었다.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는 <저장소 Réserve>(1990-) 연작에서, 누군가가 입었던 헌옷들을 전시장 벽에 걸었다. 볼탄스키가 가져온 헌옷들은 신체에 대한 상징적인 은유뿐만 아니라, 섬유 사이에 짙게 밴 체취를 포함한다. 그 익명의 체취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그들의 부재를 증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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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uan L. Hsu, The Smell of Risk: Environmental Disparities and Olfactory Aesthetics (New York,: NYU Press, 2020),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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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렐 콜나이, 『혐오의 현상학』, 하홍규 옮김 (한울 아카데미, 2022), 80-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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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혜은 작가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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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ry Shiner, Art Scents: Exploring the Aesthetics of Smell and the Olfactory Arts (Oxford University Press, 2020), 182-200. ↩